수치심의 진열장엔 내가 감추고 싶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날은 희미한 노을빛이 도시를 감싸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감정 잃어버림의 축제, 잃어버린 감정 박람회는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잃어버린 내면들을 찾기 위해 모여드는 특별한 장소였다. 이곳은 감정의 미궁과 용기의 탑, 그리움의 미로, 그리고 수치심의 진열장 등 다양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각각의 구역에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거나, 혹은 선택적으로 감정을 숨길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들이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수치심의 진열장’에 관한 이야기다.
수치심의 진열장은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다. 이 미로 속 작은 방은 술잔 하나, 목소리 하나 가득한 곳이었으며, 그 속에는 사람들의 가장 민감한 이야기들이 투명한 유리 액자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 들어서서, 무겁고도 무서운 기운이 느껴졌다. 알고 있던 그것, 바로 내가 감추고 싶었던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어릴 적의 한 순간, 친구와의 말 없는 서운함, 부모의 기대와 자신의 한계 사이에서 겪은 수치심이 뒤엉킨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 액자들을 차례차례 훑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고도 우아하게 빛나는 유리 진열장 속에는, 한 편의 이야기와 그림이 있었다. 바로 내가 감추고 싶던 바람, 용기 없이 감췄던 감정, 그리고 이루지 못한 꿈들이었다.
드디어 내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그 진열장 앞에 섰다. 투명한 유리 너머로 보이는 것은 작은 일기장이었고, 그 위에는 복잡한 글씨체로 적힌 작은 문장이 있었다. ‘나는 항상 부족하다고 느꼈다. 남들이 웃을 때, 나는 늘 뒤로 숨고 싶었다. 내 목소리가 들릴까 두려웠다. 수치심이 내 마음을 꽁꽁 묶었고,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을 몰랐다. 그런데도 나는 이 순간, 마음속 깊이 감추고 살았던 이야기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읽는 동안, 마음속의 무거운 짐이 한층 더 무거워졌다. 이것이 바로 내가 감추고 싶던 이야기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잠시 멈춰 섰다. 우리 모두는 어릴 적의 어떤 장면을 감추기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조차 잊곤 한다. 하지만 이 박람회는, 이렇게 감추고 싶은 이야기를 누군가가 꺼내 인정해주는 곳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천천히 마음속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어, 유리 진열장 앞에 놓인 작은 기록장에 적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용기를 찾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그 짧은 문장은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림을 주었기에, 나는 뜨거운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다짐했다. 이 박람회만이 내 기억의 구멍을 채워줄 마지막 희망임을.
그 순간, 주변을 둘러싼 미로의 벽들이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수치심의 진열장을 곁눈질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들 역시 각자 감추고 싶은 이야기, 상처와 부끄러움, 또는 용기의 흔적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곳이 단순히 감정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을 치유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으며, 작은 결심을 다졌다. 내 이야기를, 그리고 이 박람회를 통해 찾은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용기 있게 세상에 보여줄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인 풍경 속에서 한 작은 소리, 희미한 목소리 하나가 스며들었다. ‘수치심은 누구에게나 있죠. 하지만 그것이 나를 감싸는 벽이 되어서는 안 돼요. 지금 이 순간, 나는 내 수치심을 인정하고 싶어요. 내가 감추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꺼내 놓고 싶어요.’ 주변의 다른 관객들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 위한 작은 움직임을 시작하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잃어버렸던 감정을 바로 찾는, 시작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미로 속 감정의 장벽을 허무는 작은 불씨를 지폈음을 확신하며, 차가운 유리 속에 담긴 내 이야기를 차례차례, 세상에 펼쳐 나갈 결심을 굳혔다. 앞으로 어떤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감추어진 이야기들이 언젠가는 치유의 길로 이끄는 시작점이 될 것임을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