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평소와 마찮가지로 아침이 밝았지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도시의 작은 광장에 자리한 잃어버린 감정 박람회로 향했다. 이 축제는 이미 세 번째 해를 맞이했지만, 매년마다 새로움과 가슴 벅찬 기대를 품고 사람들을 맞이해왔다. 왜냐하면 이곳은 잃어버린 감정을 찾아주는 마법과 같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감정이란 생의 중요한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잃어버리고 망각 속에 묻혀버리곤 한다. 그것이 두려워서, 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사람들은 종종 자신도 모르게 감정을 떠나보내곤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그런 감정을 다시 품을 수 있는 마법이 존재한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내마음의 한 조각, 잃어버린 안도의 감정을 찾기 위해 일부러 일찍 길을 떠났다.
박람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에 다시금 감탄했다. 어떤 이는 오래된 노트북에 적힌 글귀를 읽으며 자존감을 되새기거나, 어떤 이는 촛불 앞으로 걸으며 과거의 소중한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곳곳에는 감정의 이름이 붙은 부스들이 있었고, 참여자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을 찾기 위해 우선 작은 단서들을 모으거나, 감정을 일깨우는 다양한 체험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안도의 분수대’였다. 거대한 투명 분수대는 은은한 빛과 함께 은은하게 흐르는 물결이 매우 조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분수대 주변에는 온화한 조명과 잔잔한 음악이 어우러졌고, 공간은 마치 감정을 되찾기 위한 명상 또는 치유의 시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나는 그분수대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다. 구름이 차갑게 스치는 새벽의 공기를 느끼며, 나의 배경 속에 잠들어 있던 감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을 잃어버리고 살았던가. 때로는 희망, 때로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안도의 감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이 감정을 찾기 위해 여러 부스를 기웃거리다가 자연스럽게 안도의 분수대 앞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주변의 호기심 가득한 눈길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쉰 후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때 나는 갑자기 마음속에 강한 풀림이 일었다. 삶의 여러 복잡함, 고민들, 그리고 작은 불안의 무게가 잠시 저절로 사그라졌다.
이 순간, 나는 몸 안의 긴장이 풀어지며 마치 세상의 모든 무게가 녹아내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나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 깊이 스며들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오래도록 내 안의 감정을, 특히 안도의 감정을 찾지 못했을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오늘만이라도, 나는 이 분수대가 품고 있는 치유의 힘을 빌려 내가 잃어버린 어떤 것—아니, 꼭 하나의 감정뿐만 아니라 감정의 조각들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 앞에 있는 맑고 투명한 물줄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과 꿈, 슬픔과 두려움, 그리고 작은 기쁨들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을 어루만지고 다시 품어줄 ‘안도의 분수대’라는 이름이 어떤 신비로움과도 같음을 새삼 깨달았다.
그때 갑자기 작은 인형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부드러운 화양연화의 그림처럼 빛이 번쩍이고, 그 인형은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 순간의 맑음과 평안임을 기억하세요. 삶의 시끄러움속에서도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자신에게 허락할 수 있어야 해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어딘가 멀리서 온 것처럼, 따뜻하고 차분했다. 나는 잠시 멈춰서 그를 바라보았고, 자연스레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긴장이 차츰 눈녹듯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인형이 손짓하듯 가리키는 분수대의 물줄기를 다시 바라보며, 느꼈다. 오늘 이 순간 나는 내 안에 깊숙이 숨겨진 작은 기쁨과 평안을 다시 찾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찰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단순한 감정의 복원 그 이상이었다. 그 분수대의 물은 단순히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마음속에 숨겨졌던 수많은 감정들과 기억들을 일깨우는 마법의 힘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바로, 잃어버린 감정을 찾는 여정의 시작임을 깨달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갑작스레 뭔가 더 큰 세계와 연결된 듯한 희미한 느낌이 밀려왔고, 나는 곧이어 내 안에 펄떡이는 감정의 강렬함과 함께, 앞으로의 여정이 얼마나 특별하고도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숨을 들이쉬고, 마음속에서 새어나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곳이 내게 보여줄 또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앞으로 펼쳐질 여정이 어떤 의미와 감정을 우리에게 전달할지 아직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이 순간이 내 인생의 작은 전환점이 되리라는 확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