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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감정이 아니었다 내가 잊으려 했던 감정이었다

잊으려 했던 감정

어느 날, 세계는 묵묵히 흘러가는 듯했지만, 마음속 깊이 존재하는 감정들은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들이 희미해지거나 잊히는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그러자마자 더욱더 감정들이 줄어들었다. 점차 감정의 풍경은 흐릿해지고, 심지어 누구도 자신이 원래 느꼈던 행복, 슬픔, 용기, 그리움의 색깔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결코 완전히 기억을 잃지 않는 법, 감정의 자리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끈질기게 남아있는 흔적들이 있었다. 바로, 잊혀 가던 어느 순간의 감정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일상이 반복될 무렵, 어느 정체 모를 마법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감정의 복원 박람회’라 불리는 이 장대한 축제는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하여금, 그 감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특별한 장소였다. 박람회장은 마법사의 손길과 신비한 연금술의 조화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각 부스마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정을 다시 되찾도록 설계된 기이한 구조물과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다양한 연합체들이 각기 서로의 감정을 되찾기 위한 전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인물은 윤하라는 소녀였다. 그녀는 어렸을 적 느꼈던 따뜻한 ‘기쁨’을 점차 잃어버렸다고 느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햇살이 비추던 날, 가족과 함께 웃으며 산책하던 모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실체인지조차 모를 만큼 흐릿한 그림이었다. 윤하는 박람회장에 들어서자마자, ‘용기의 부스’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자신이 겁내던 감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설계된 공간이었다. 이곳의 마법사들은 그 감정을 시각적, 촉각적, 그리고 감각적 차원에서 재현하는 장치들을 증강현실과 결합하여 선보이고 있었다. 윤하는 그 부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복잡한 퍼즐과 마법진이 빙 둘러싸인 공간에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졌던 두려움과도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깨달았다. 자신이 찾고 싶었던 것은 진정한 용기였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용기를 잃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잊으려 했던 것임을. 용기를 다시 찾는 과정은 단순히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약함과 불안을 인정하는 용기였다. 이 부스의 마법은 그녀의 감정을 외부로 끌어내어 시각적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그 속에서 그녀는 과거의 자신이 두려움에 떠는 모습과 마주했고,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쌓인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녀는 비로소 이해했다. 잊고 싶었던 감정은 사실 자신이 버리고자 했던 것들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준 소중한 일부였던 것이다.

이어서 그녀는 ‘그리움의 미로’라는 이름의 또 다른 부스로 걸음을 옮겼다. 미로는 마법의 힘으로 촘촘하게 짜여졌으며,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마다 옛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은 바로, 그녀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함께 산책하던 기억이었다. 잃어버린 감정들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순간, 미로의 중심부에 도달한 그녀는 자신의 진심이 이 감정을 다시 찾지 못하도록 쥐고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무심코 던진 ‘여기서 떠나고 싶다’라는 말이 오랫동안 그녀의 마음을 감싸고 있었다. 그리움이 무뎌지고, 프레임처럼 얽혀 있던 감정들이 다시금 촘촘히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 감정은 그녀에게 삶의 희망과 따뜻함을 전달했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애틋함이 짙게 깔려 있어서, 현실과의 괴리조차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결심했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그것을 품고 살아가는 선택을 하리라.

이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했다. 박람회장이 열리는 동안, 각기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감정들을 끌어내려 애썼고, 그 속에서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잊혀졌다고 믿었던 사랑의 감정을 깨닫고, 다시 한 번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갈 용기를 얻었으며, 어떤 이는 자신의 슬픔을 서서히 품는 법을 배웠다. 그와 동시에, 감정의 복원은 단순한 기억의 회복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임이 점점 드러났다. 사람들은 자신이 잃어버린 감정이 결국 자신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중요한 조각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저녁, 박람회장이 서서히 마무리될 때 즈음, 윤하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감정을 다시 손에 넣었다고 느꼈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고, 그 미소는 자신도 모르게 오늘 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온 것이었다. 감정을 다시 찾기 위해 겪은 일련의 여정은 긴 터널을 벗어난 빛과 같았으며, 이제 그녀는 새로운 자신으로서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번 경험은 그녀에게 단순한 감정의 회복 그 이상을 의미했고, 잊혀졌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교량이었다. 그리하여, 박람회장의 문이 닫히며 또 다른 이야기의 막이 올랐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미묘한 기운은 분명히 다음 여정을 예고하고 있었다. 감정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찾는 것임을, 앞으로의 여정은 그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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